달리기와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
어렸을 때부터 나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또래 친구들은 체육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으로 나가 축구, 족구, 농구를 즐겼지만, 나는 주로 운동장을 한 바퀴 걷거나 교실 창밖을 멀뚱히 바라보곤 했다. 솔직히 운동이 별로 재미없었다. 땡볕 아래서 친구들과 미친 듯이 공을 찰 시간에, 교실에 앉아 좋아하는 책 한 페이지를 더 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나는 미친 듯이 운동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하프마라톤에서는 1시간 56분이라는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평일 아침에는 묵묵히 헬스장에 나가 근력 운동을 하고, 주말이면 루틴처럼 수영과 달리기를 한다. 한때는 땡볕에 뛰는 것이 그토록 싫었는데, 이제는 스스로 찾아 나선다. 물론 체력 단련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요즘은 그냥 뛰고 수영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
나는 왜 과거에 운동을 멀리했을까? 돌이켜보면 선천적으로 비교하고 판단하는 상황을 싫어하는 내 성향 때문인 것 같다. 특히 경쟁적인 구기 종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비교와 판단이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 팀 에이스는 누구’, ‘우리 팀은 얼마나 잘하는지’, ‘팀의 약점은 무엇인지’, ‘나는 평균 대비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등등.
이런 비교와 판단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처럼, 부족한 점은 끊임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우리 팀이 아무리 잘해서 리그 1등을 한들 더 잘하는 팀은 세상에 널려 있고, 내 플레이에서도 보완할 점은 계속 발견된다. 경쟁적인 스포츠에서는 비교와 판단이 당연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과정이 피곤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여가로 스포츠를 즐길 때만큼은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수영과 달리기, 그리고 헬스는 매력적이다. 이런 종류의 운동은 오롯이 '나와의 싸움’에만 집중하게 해준다. 지난번에 1km를 쉬지 않고 수영했다면, 이번에는 100m만 더 해보자 다짐한다. 10km를 60분에 뛰었다면, 다음번엔 58분 안에 들어오고 싶다는 목표를 세운다. 혼자서 할 수 있고, 타인과 비교하거나 판단받을 필요 없이, 오로지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지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경쟁적인 구기 종목이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상대치’로 이야기되는 반면, 달리기나 수영 같은 운동은 나 혼자 만들어 가는 '절대치’로 이야기된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타인의 비교나 판단에서 벗어나 오롯이 내 세계에 집중하는 '절대치’의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원한다.
이러한 생각은 최근 이사를 고민하며 새로운 동네를 찾는 과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주변 동료들에게 "살기 좋은 동네는 어디예요?"라고 물어보면, 여기서도 어김없이 '상대치’의 언어가 등장한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좋은 동네’의 고정된 기준들이 있다.
- 회사와 가까운가?
- 역세권인가?
- 치안이 괜찮은가?
- 가격이 저렴한가?
- 생활 편의 시설이 주변에 있는가?
- 평지인가?
- 공원이나 하천이 가까운가?
- …
모든 동네는 이런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되고 비교된다. 그래서 소위 '좋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부러움을 사고, 그렇지 않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때로 자조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출퇴근하는 데에 1시간 반 걸려요 등등…)
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살기 좋은 동네’라는 것을 정말 이렇게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현재 잠실에 살고 있는데, 이곳은 흔히 말하는 '좋은 동네’의 대부분의 기준을 충족시킨다. 회사까지 10분이면 도착하고, 평지에 치안도 좋으며, 자취생에게 필요한 생활 편의 시설부터 공원까지 부족함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사는 이 동네가 이상적일 만큼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잠실은 큰 도로들로 동네가 분절되어 있어 길을 건너려면 늘 커다란 횡단보도를 이용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은 마치 각자의 성채를 쌓아 올린 듯 배타적인 느낌을 준다. 심지어 아파트 이름조차 낯설다. 유명한 ‘리센츠’ 아파트는 'River Central Zenith’의 약자라는데, 굳이 번역하자면 '강 중앙의 정점’이라는, 황당한 이름이다. 나는 이렇게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느낌의 동네가 꼭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2년 가까이 살면서도 정이 잘 붙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동네는 연희동이나 연남동처럼 살아 숨 쉬며 사람 냄새가 느껴지는 곳이다. 건물들은 낮고 자연스럽게 서로 조화를 이루며 들어서 있다. 길도 넓지 않아 건너는 데 부담이 없고, 골목 구석구석에는 보석 같은 가게들이 숨어 있어 탐험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과거의 나는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을 나도 좋다고 받아들이는, ‘상대치’ 중심의 사고방식을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음에 살 동네를 정할 때도 무의식적으로 동네를 비교하고 서열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절대치’를 기준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내가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내가 더 행복해지려면 어떤 동네에 살아야 할까?’ 와 같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질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