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진
박서진

잠실을 떠나면서

다음 달이면 3년 넘게 살았던 잠실을 떠난다.

처음 잠실에 왔을 때는 조용한 주거 지역 특유의 분위기에 끌렸다. 가로수가 잘 정비되어 있어 초록초록하고, 인도가 넓어 걸어 다니기 편하고, 마트나 공원 같은 생활편의시설도 나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요즘 한국답지 않게 어린아이가 많다는 점도 좋았다.

그런데 3년쯤 살아 보니 이런 동네는 지금의 나와 맞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식 신도시 분위기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드넓은 도로가 지역을 관통하고, 아파트가 블록 단위로 들어선 동네. 길 건너편에 가려면 10차로 도로를 건너야 해서 매번 큰마음을 먹어야 하고, 가게는 대부분 아파트 상가 안에 있어 마음 편히 들르는 단골집을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동네에서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낸 기억은 많지 않다. 카페에 갈 때도 괜히 차를 타고 더 멀리 나가게 되고, 밥을 먹을 때도 다른 지역의 음식점을 더 자주 찾게 된다. 걸어 다니는 것보다 차를 타는 편이 편하니까.

2호선 역세권에 평지라는 점 등 장점이 많은 동네이지만, 나는 걸어 다니며 다양한 이벤트를 마주치면서도 단골 가게에서 편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동네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잠실은 나와 맞지 않았고, 작년부터 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강해졌다. 그러다 마침 기회가 닿아 다음 동네를 구하고 이사하게 되었다.

그래도 잠실에는 좋은 기억이 많다.

운동하기에는 최적화된 동네다. 잠실한강공원을 따라 탄천 유역까지 달리거나, 나무가 우거져 지붕을 만들어 주는 성내천을 따라 올림픽공원까지 달린 날이 백 번은 될 것 같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뒤로는 여의도로, 팔당으로 많이도 라이딩했다. 수영장도 많아 올림픽수영장과 잠실1수영장의 드넓은 50m 풀로 자유수영을 자주 다녔다.

산책이나 피크닉을 하기에도 좋다. 특히 잠실한강공원은 다른 한강공원과 달리 사람이 많지 않아 참 좋았다. 여유 있는 주말이면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운전해서 교외로 나다니기도 편한 동네다. 올림픽대로를 따라 조금만 달리면 강원도나 충청도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를 바로 탈 수 있어 어디든 가기 좋다. 양평, 두물머리, 남양주, 구리에 많이 다녔다. 초록빛 풍경을 보며 카페에서 일하다 오는 것도 부담이 없었다.

그리고 잠실에서 유일한 단골 가게였던 기투커피로스터스. 집과 거리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주차도 편하고 인테리어도 좋고 커피도 맛있어서 주말마다 자주 갔다. 갈 때마다 스탬프 쿠폰을 받았지만 매번 잃어버린 탓에, 서른 번 넘게 갔으면서도 무료 음료는 한 잔도 받아 보지 못했다. 이제는 자주 가기 어렵겠다.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하다. 낮에도 밤에도 저마다 다른 색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던 잠실한강공원도 이제 안녕. 열심히 포인트를 쌓아 겨우 1,000포인트를 모을 때쯤 영업을 종료해 버린 하나로마트와 상가도 안녕. 기투커피로스터스는 이사한 뒤에도 근처에 들를 일이 있으면 꼭 다시 갈게.